─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자세, 멋있습니다.

 

그래도, 역시 도중에 한계가 와서. 당시 다니고 있던 학원의 친구에게, 그 당시의 상황을 상담해봤어요.

그랬더니, 그 아이는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요, [ 우리 학교로 와! 우리 학교는 그런 일 절대 없어! ]라고 말해줬어요. 그 한마디가 계기가 되어서, 그 중학교로 전학 가기 위해서 2번의 이사를 했었어요.

그때도 같은 시내에서의 이사였어요.

 

 

─학원에 마음의 의지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였네요.

 

정말 그래요. 새로운 학교에서는, 만에 하나 이지메가 발각된다고 해도 학교의 선생님들이 모두 모아서 이지메를 시킨 아이에게 엄청나게 혼을 내주시거나 해서 전학 가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어요!

엄청 시골의 학교로, 수업 중 교실에 잠자리가 들어오는 그러한 학교였는데요, 그런 한가한 부분도 좋아했었어요.

한번, 일로도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그만큼 저에게 있어서 [ 모교 ]라고 한다면, 중학교 3학년 때 다니고 있던 학교예요.

참고로, 새로운 학교에서도 관악부에 들어가서 플루트를 이어갔어요. 전 학교라면 힘들었던 활동도, 새로운 학교에서는 무척 즐겁게 했어요.

 

 

─중학교 3학년에, 드디어 나다움을 전면으로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는 거군요. 그러고 보니, 예능 활동을 시작한 것도 그쯤이네요.

 

네, 중학교 3학년 때에 본 오디션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어요. 게다가 응모했던 것도, 전학을 추천해준 친구가 계기였어요.

합격하면 상금을 받을 수 있는 구조로 이어져서 안된다는 마음으로 응모해봤더니, 그랑프리가 되어버려서 ㅎㅎ.

 

 

──아역 활동을 시작했을때와 같은 전개 아닌가요?

 

그렇네요. 이때도 상금을 받을 생각밖에 없었기 때문에, 탤런트로서 활동을 하는 것은 에상외였어요.

 

 

─애초에, 고등학생이 되면 예능 활동에 대해 엄격한 학교도 있는 것 같은데, 다니고 있던 학교는 관용했었나요?

 

현립의 고등학교에 다녔었는데요, 거기에서도 친구나 선생님께 [ 모로하시, 그거 봤어~ ] 같은 느낌으로, 엄청 응원해주셨어요. 게다가, 학생이었으니까, 토일만 도쿄에 가는 정도로, 기본적으로는 이와키시 내에서의 활동이 많았어요.

역 건물의 테마송을 부르거나 했기 때문에, 후쿠시마현 내에서는 엄청 유명했었어요 ㅋㅋ!

지금도 그때 활동을 알아주시는 분도 있거나, SHOWROOM에서 방송을 할 때도 [ 고향의 자랑이야~! ]라고 코멘트를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무척 기뻐요. 

그런 응원을 받으면, 더욱더 후쿠시마에 대한 일을 하고 싶어요.

 

 

─상경하고도, 고향사랑은 변하지 않고 있네요. 그런데, 2011년 3월 11일, 고향 밀착형의 활동을 이어오던 사나씨을 동일본 대지진이 습격합니다. 지진이 일어난 것은...?

 

중학교 3학년이 끝날 때쯤이었어요. 아직 그때는, 고향에서 탤런트로서 활동을 하고 있던 시기였어요.

고등학교 3학년에 수험을 이유로 그만두기 전까지는 계속 거기에 소속되어있었는데요, 그 지진을 계기로, 좋든 나쁘든 후쿠시마가 주목을 받게 되었어요. 힘이 약한 자신이라도 할 수 있는 봉사는 없을까라고 생각한 결과, 2014년부터 고향의 친구와 함께, 자선 유닛으로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구체적으로는 어떤 활동을 했었나요?

 

저희들의 노래와 춤을 보고 기부받은 돈을, 지진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에게 전액 기부를 했어요. 어디까지나 저 개인의 생각이지만, 탤런트가 일방적으로 [ 같이 힘냅시다! ]라고 말해도, 당시, 실제로 피해가 있던 사람들 에게 하면 [ 아니, 충분히 힘내고 있어 ]라는 느낌이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고향 출신의 사람으로서 피해자분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시작한 이상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와 춤으로 기부를 모으자!라고 생각해서. 2015년에 대학에 진학하기까지는 그 활동을 이어갔었어요.

 

 


 

 

 

─그 후, =LOVE의 오디션을 본 게 2017년 1월로, 대학 진학과 함께 예능계를 물러났었는데, 왜 다시 오디션을 보려고 생각했었나요?

 

사실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취직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염원의 스파 리조트 하와이안즈 말인가요 ㅎㅎ

 

그건 이미 상경해버렸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았어요 ㅋㅋ.

하지만, 다른 하고 싶은 일을 찾지 않고, 취직한다고 해도 뭐를 해야만 좋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때 딱 마침, 인터넷에 사시하라 (리노)씨가 성우 아이돌을 프로듀스 한다는 오디션의 정보를 찾아서, 시험 삼아 봐 볼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계속 어중간한 마음이었다면 마지막까지는 남지 못했겠네요.

 

그렇네요. 2차 심사까지는 헤로 헤로 (힘없고, 축 늘어진 상태) 였었는데요, 최종심 사전에, 후보자의 매력을 많은 분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SHOWROOM 방송이 시작됐어요. 

저도 최종 심사일 까지는 매일 SHOWROOM 방송을 했었어요. 그러자,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이 눈에 보이게 늘어가고 있고, [ 무조건 합격할 거야! ] 라던가 [ 만나기를 기다릴게요 ]라고 말해주시는 분도 있었어요.

그때까지는 저 자신을 위해서만 힘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이 사람들을 위해 합격하고 싶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의기를 고쳐 담아 도전했던 최종심 사는, 역시 긴장했었나요?

 

사시하라 씨가 눈앞에 있으니까, 엄청 긴장했었어요!

항상 버라이어티에서 봤던 사시하라 씨라던가, 반짝반짝하던 아이돌로서의 사시하라 씨가 아니라, 엄청 진지한 표정으로 계셨기 때문에, [ 아... 이런 게 프로듀서인가 ]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함께 일을 하고 있는 중에도, 사시하라 씨로부터는 배울 점이 많이 있어요. 실제로 아이돌로서 큰 무대에 섰던 분이니까, 라이브 등에 관한 지시도 정확하시고, 엄청 바쁘신 분인데도, 제가 버라이어티에 나갈 때는 [ 여기 발언은 좋았어 ] [ 여기는 조금 더 이런 식으로 기다리는 편이 좋았을 것 같아 ]라고 말하는 것을 장문으로 LINE에서 지적해주세요.

그런 식으로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도 생각해주셨기 때문에, 사시하라 씨는 그렇게 인기가 많구나 라고 깨달았어요.

 

 

─그렇게 자세한 부분까지 봐주시고 계시는군요.

 

맞아요. SNS 같은 것도 봐주시고 계신다고 생각하고, 사시하라 씨에게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좋은 의미로 방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충고를 받는 반면, 사시하라 씨는 사나씨의 가창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오랫동안 해오던 춤뿐만이 아니라, 노래도 이전부터 배워왔었나요?

 

노래는 전혀 배우지 않았고, 취미정도였어요. 보컬 트레이닝도 한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코러브에 들어오기까지는 노래방레벨 정도 였어요.

 

 

─그게 지금에서는 이코 러브에서 1,2위를 다툴정도의 가창력이라고 불릴 정도니까, 상당한 노력을 하신 거네요.

 

아니요, 아직 멀었어요. 하지만, 노래는 엄청 좋아해서, 계속 노래 부르고 있어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큰 소리로 노래 불렀더니, 바로 뒤에 사람이 있었어!라는 일도 있었어요.

 


 

 

 

 

─실례되는 말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르겠지만, 그 모습이라면 멤버로부터도 신기한 캐릭터 취급받고 있나요.....?

 

신기한 캐릭터랄까,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늘 듣고 있어요 ㅋㅋ. 그래도, 이 캐릭터 덕분에 나이 차이가 나는 멤버와도 친해질 수 있었기 때문에, 괜찮지 않은가 해서. 게다가, 이런 성격이 된 것은 이유가 있어요.

 

 

─어떠한?

 

캐릭터적으로 별로 믿어 주지 않지만, 중학생 때의 이지메 이후, 아무래도 사람의 반응에 민감해져 버려서, 지금까지도 사람을 눈치 보는 때가 있어요. 특히, 중학교 시절, 어제까지 친했던 친구에게 배신당했기 때문에, 팬분들도 포함해서 동세대의 사람이 조금 무서워서.....

새로운 자매그룹이 생기고, 여러 가지 움직임이 있는 중에, 솔직히 [ 지금 응원해 주시는 팬 분이 나를 좋아하지 않게 되어버릴 수 있어 ]라는 불안감을 계속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어른들과 이야기를 하는 편이 즐겁다고 이야기한 거군요.

 

그래도, 쓸모없는 캐릭터로 있으면 [ 어떻게 보이는 거지? ] 라던가 [ 이 사람, 실제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나? ]라는 것을 별로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평소가 쓸모없는 사람 상태지만, 가끔 멋있는 것을 말하면 [ 의외로 멋있는 부분도 있잖아! ]라고 되는 메리트가 있어요 ㅋㅋ.

지금의 스타일로 편하게 있기 때문에 마음이 편해요.

 

 

─가끔은, 멤버에 대해서 최연장자만이 가능한 충고라던가, 지원을 하는 일도 있나요?

 

하는데요, 최연장이라는 이유보다는, 멤버이기 때문에, 이네요. 서로 의지되어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지금으로서는 그게 당연하게 되었어요. 

멤버로부터 [ 사나쨩은 쓸모없는 사람인데도 상담해보면 의외로 제대로 된 충고를 해주네 ]라고 들은 적도 많아요.

 

 

─서로 의지한다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은,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역시, 데뷔전에 합숙이 가장 컸다고 생각해요. 합숙은 정말로 힘들어서, 사이토 나기사 라던가 [ 돌아갈래! ]라는 소동도 있었고, 다른 멤버도 엉망으로 되었었어요. 하지만, 그런 때에도 모두를 정리해준 것이, 리더인 안나와 센터인 히토미이에요. 히토미가 이끌어주고, 안나가 의지되어주는 모습을 보고, 나도 좋은 언니처럼 모두를 지원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마지막 날에 선생님에게 방에서 나오라고 들은 게 저뿐이라는..... 설마의 전개였어요.

 

 

─왜 그런 일이 되었나요?

 

수면시간을 없애고 연습을 한 것이 원수가 되어서, 전혀 안무가 외워지지 않았어요. 그때는 무척 분했어요.

당시는 20살 이었는데요, 방 밖에서, 시끄럽게 애처럼 소리를 내면서 울었어요. 근데 매니저님이나 댄스 선생님, 노래 선생님까지도 와주셔서, 꾸짖으면서도 격려해 주셨기 때문에, 거기서 부터 다시 데뷔를 향해 열심히 할 수 있었어요.

 


 

 

 

 

──데뷔 후에, 특히 인상에 남아있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그 타이밍에 =LOVE가 진화했다 라던가.

 

진화라고 한다면, 무대 [ 애니테레 X =LOVE 스테이지 프로젝트 [ 캐모노 프렌즈 ] ]이네요. 처음에는 모두, 무대에 도전하는 것을 무서워했었고, 팬분들도 무척 걱정하면서 지켜봐 주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힘들면서도 다 같이 한 개의 작품을 만들어 냈더니, 팬분들은 물론, 원작의 팬분들도 기뻐해 주셨어요. 저 자신도 그때에 역기 했던 역할의 영향으로 [ 뮤지컬을 하고 싶어 ]라는 새로운 꿈도 찾았기 때문에, 거기서 큰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멤버끼리 뿐만 아니라, 팬분들과의 거리도 더욱더 좁혀 드는 순간이었군요.

 

그렇네요. 시동했던 때부터 말하듯 [ 팬분들과 저희들은 이코루 (=)의 관계 ] 예요. 저도 이전에는 케야키자카 46의 팬으로서, 멤버 모두로부터 원기를 받고 있었는데요, 아이돌로 있는 저도 많은 팬분들로부터 파워를 받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로 있고 싶어요.

 

 

─그렇다면, 이후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원래 성우를 목표로 이코 러브에 들어왔었는데, 요요기 애니메이션 학원에 있는 것으로 받고 있는 성우일도 많이 있기 때문에, 이런 저라도 좋다고 말해주시는 분들이 조금이나마 계신다면 성우 쪽도 더욱 열심히 하고 싶어요. 

꿈이 이뤄진다면, [ 크레용 신짱 ]을 엄청 좋아하기 때문에, 사시하라 씨처럼 극장판의 게스트 성우를 하고 싶어요.

이코러브로서도, 더욱 사랑받을 수 있는 그룹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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