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ile 1996년 8월 3일 태어남. B형. 2017년에 시동한 =LOVE의 멤버로, 오오타니 에미리,

오오바 하나, 오토시마 리사, 사이토 키아라, 사이토 나기사, 사사키 마이카, 사타케 논노, 

타카마츠 히토미, 타키와키 쇼코, 노구치 이오리, 야마모토 안나와 함께 12명이서 활동중. 

4월 24일에 5th 싱글 [ 찾아라 다이아몬드 리리] 를 발매. 4월 11일(목), 13일(토), 19일(금)에 

메이한히가시에서 첫번째 투어 "지금, 이 배에 타!" 를 행한다.



쓸모 없는 사람?

 

어렸을 때는 공원이 좋아서, 자주 다칠 정도로 활발했었다고 하는 모로하시 사나.

아역으로서 연예계에 발을 들인 계기나,

중학생 시절에 왕따를 당했던 경험, 지진 재난을 계기로 시작한 활동에 대해, 그리고,

=LOVE 오디션에 합격해 멤버가 된 지금,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이코러브 최연장자 [ 쓸모 없는 사람 ] 캐릭터라고 하는 모로하시가,

그 스타일에 침착함에 따른 메리트도 밝혀주었다.

밝은 미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장렬한 과거가 밝게 드러난 퍼스널 인터뷰!

 

 

 

 

멤버들로부터, [ 쓸모 없는 사람이지만 상담하면 의외로 제대로 충고해줘요. ] 라고 듣는 것도 많아요.

 


─현재는 상경해서, 대학을 다니며 정력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것 같은데요, 오늘은 고향인 후쿠시마 이와키시에서 지내던 때 부터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나씨의 매력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먼저 가족구성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저는 외동이기 때문에 아빠, 엄마, 저 이렇게 3명이에요. 그리고 강아지 2마리.

두마리 모두 치와와이고, 샨티-랑 캔디라고 불러요.



─그럼 유년기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무엇입니까?


유치원때는 바다와 가깝던 할머니 집에 갔던 기억 밖에 없네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할머니 손녀였기 때문에 매일같이 갔었어요.

그리고 어렸을때는 공원을 엄청 좋아했었어요. 가족이랑 드라이브 할때마다 제가 바로 공원을 찾아서, 이와키시 내에 있는 공원은 전부 가보지 않았을까? 정도로 많이 갔었어요.



─대단해요! 그렇게 까지 공원을 좋아한다고 말한거는, 어느쪽인가 말하면 액티브한 성격이었나요?


꽤 활발 했었어요. 가족들이 잠시라도 한눈팔면 바로 없어져 버리는 아이였어서, 자주 미아 방송됐었어요 ㅎㅎ. 상처도 늘 있었고, 골절은 물론, 얼굴도 몇바늘이나 꿰매고, 머리도 2번이나 찢어졌었어요.



─생각 이상으로 활발해서 놀랬어요. 가족들도 걱정이 끊이질 않았었겠네요?


늘 상처를 입었었기 때문에 익숙하셨을거라고 생각해요. 중학생때도, 슈퍼의 카트를 밀다가 다리가 걸려 넘어져서, 턱이 찢어진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일중인 엄마한테 [ 나 턱 꿰매고 올게-! ] 라고 말하니까 엄마가 [ 알겠어- ] 라고 가볍게 대답했었던 기억이 있어요.



─틀림없이 말광량이였던 시절은 유년기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비교적 클때 동안은 그런 느낌이였어요 ㅎㅎ. 형제는 없지만 사촌에 남자 아이들 밖에 없어서, 어렸을때부터 다같이 소꿉놀이를 하는것 보다, 바다에 가거나, 산에 비밀기지를 만들어서 놀거나 하는게 많았어요. 게다가 유치원에는 친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놀고, 혼자 다쳐서 돌아가는 경우도 자주 있었어요.



─그렇군요. 같은 유치원에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있었다면, 남녀 불문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왔을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뭐 어렸을때는 얼굴이 확실히 귀여웠었지만 ㅎㅎ.

보이쉬한 옷 밖에 없었고, 여자 아이들과 같이 노는것 보다, 그때는 남자 아이들과 함께 노는게 더 재미있었어요.



─외롭지는 않았었나요?


혼자서 노는게 익숙해서, 혼자 카드가게 놀이를 한다거나 혼자 의사 놀이를 해서, 나름대로 재미있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혼자서 놀이를 하면서 놀때도 제가 어떤 역할이든 다 연기하고 그래서 내심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네요.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부터도 계속 그대로 였나요?


초등학교때는 친구 복도 많았고, 6년간 즐겁게 보냈었어요. 

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시 내에서 이사를 했었어요. 

그러니까 전혀 모르는 지역의 위치에서 시작하고, 게다가, 저랑 비슷한 남자 아이들과 함께 놀러 다니는 타입의 활발한 여자 아이들이 다가 와줬기 때문에, 고립되는 일은 없었어요. 

그저, 초1때, 다른 반의 남자 아이가 제 이름의 성인 [ 모로하시 ] 를 괴롭혀서 

[ 토우모로코시! ( 옥수수 ) ] 라고 말하는 일이 있어서. 그 아이는 정말 싫었었어요. 



─분명 모로하시씨가 좋아서 그랬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런걸까요?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한때 남자 아이들이 싫어졌었어요.

여자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었던건 그런 반동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결과적으로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갔네요. 친구를 사귄것 이외에, 초등학교 저학년때 열중한것이 있었나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쭉, 슈퍼 리조트 하와이안즈 (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에 있는 대형 레져 시설 ) 를 엄청 좋아했었어요. 초등학교 저학년때쯤은 연간패스권도 갖고 있어서, 엄마는 온천을 목표로, 저는 쇼를 목표로 해서, 거의 매일 갔었어요. 그 영향으로 훌라댄스로 배우기 시작했어요.



─훌라댄스는 자기가 배우고싶다고 먼저 말했었나요?


네, 제 부모님은 [ 하고싶은게 있으면 해 ] 라고 하는 타입이여서, 제가 조금이라고 흥미를 갖고 있으면 하게 해주셨어요. 그래서 시기는 각각 다르지만 학원 외에, 수영, 피아노, 플룻, 플라멩코, 타히티안 댄스를 배웠었어요. 특히 플라멩코랑 타히티한 댄스는 초등학교 저학년때 장래의 꿈이 [ 슈퍼 리조트 하와이안즈의 댄서가 되는 것 ] 이였던 적도 있어서, 엄청 열중 했었어요. 집에서도 무대를 만들어서 노래 부르거나, 춤추거나 했었어요. 예전부터 사람 앞에 서고싶다라는 마음이 강했었어요.



─사나씨는 아역으로서도 활동을 한 것 같은데, 그것도 사람 앞에 서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건가요?


아역을 한것에 대해서는, 솔직히 그정도 까지 사람 앞에 서고 싶은 마음은 없고......

초3인가 초4 정도에 시작했었는데요, 신문에 아역 오디션에 대한 정보가 실린걸 엄마가 발견하고 마음대로 응모했어요. 그렇다고 해도, 엄마도 설마 붙을줄은 몰랐기 때문에. 저도 예상외의 합격이였기 때문에, 편하게 했었어요. 



─그렇다고 해도, 학교에 다니면서 아역을 하게 된다는 것은, 공부와의 양립은 상당이 힘들어 보이네요. 공부를 소홀히 하지않기 위해서 열심히 해야지! 같은 압박감도 있었을까 하고.


아역에 관해선 조금 특수한 놀이를 하고 있다라는 감각이였기 때문에, 양립이 힘들다 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는데요, 단순히 공부는 열심히 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공부를 할 수 있던 아이라고 생각해요. 사회나, 암기하는 계열의 과목은 잘했었어요. 

그것보다도, 운동회같은 학교행사가 겹쳐버려서, 행사에 참가를 못하는게 너무 싫었어요. 초5가 됐을때는 아역을 그만 뒀었어요.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일도 재미 있었어요. 특수 메이크를 받는 일도 재미 있었고, 평소 티비에서만 볼 수 있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것도 재미 있었어요.



─마음의 준비없이 예능계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담력이 있었었네요.


저, 그때쯤 부터 조금 조숙해졌는지, 어른들과 이야기 하는게 좋았었어요. 

아역을 시작하고부터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동세대의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것 보다도 어를들과 이야기 하는게 신경쓰지 않고 있을 수 있다고 할까.



─그 이야기는 차차 들어보겠습니다. 아역을 그만둔 초등학교 고학년때의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있나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친구들과의 관계성이 조금 변했어요. 저는 사이가 좋은 친구 3명이랑 같이 있을때가 많았었는데요, 그 안에서 날마다 누군가 혼자서 왕따를 당하는 흐름이 일상적이게 되었어요. 



─왕따, 말인가요?


네. 사이가 좋았을때는 즐거웠어요, 3명이서 있는게.

모두 활발하고, 마음도 잘 맞고. 

그런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 오늘은 마음이 안맞네 ] 같은 느낌으로, 2명이서만 행동하고, 저를 두고 가버린다던가. 

그때는 어린이였을때여서 절교할 정도는 아니였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귀찮은 일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ㅎㅎ.



─귀찮을 뿐이라면 몰라도, 가벼운 괴롭힘이 악화되어서 이지메(왕따)로 발전 하는 케이스도 많이 있으니까, 불행중 행복이네요. 특히 아이돌은, 왕따를 경험한 분이 많다고 들었어요.


그렇네요.... 사실은 저도, 중학생때는 왕따당했었어요. 제가 간 중학교는 공학의 진학교 (대학을 목표로 한 학교) 였는데요, 그 때문인가, 증거가 남지 않지 않는 타입으로 교활하게 저를 왕따시켰어요.

그때는 인터넷도 보급되고 있던 시기여서, 인터넷 상에서 욕을 들은적도 자주 있었어요.



─왕따의 발단은 뭐라고 생각해요?


아까도 말했던것 처럼, 플룻을 배우는 곳도 있어서, 중학교부터 관악부에 들어갔었어요. 근데 저희관악부는 여자 뿐이였어요. 

거기서 먼저, 다른 부원이랑 잘하지 못해서 하루종일 연습하는 날도, 점심때는 다른 여자애들은 사이좋게 도시락을 먹고있는 중에, 혼자서 먹기도 하는 시기도 있었어요.



─그런데도 관악부를 왜 그만 두지 않았었나요?


역시 플룻이 좋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중1때는 좋은 편으로, 중2때는 힘들었었어요.

계기는 중2때 구기대회에서, 저희 반과 다른 반의 농구시합이 있었는데, 각 반별, 농구부의 아이도 한명만 참가해도 된다는 룰이 있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농구 부원의 적은 반이 불리하잖아요. 한명씩 참가한다면 평등하게 되는.


맞아요. 그저 저희 반은 농구부가 아닌 아이도 포함, 전원 골고루 패스를 돌아가면서 다같이 힘내자! 라는 생각으로 했어요. 농구부 아이에게 우선적으로 공을 돌리는 작전의 상대반의 쪽이, 압도적으로 점수를 벌고 있었어요. 그랬더니, 분해서 인지, 운동을 못해서 농구 시합에 별로 적극적이지 않았던 저에게, 반 친구들이 엄청 싫어하기 시작해서.



─불합리!


[ 웃기지 마! ] 라던가 저에게 폭언을 토해냈어요. 그런데도 저는 아무래도 좋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후에도 시합 상대반의 아이도 평소처럼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요, 그거를 저희 반 여자 아이들이 봐버려서.... 반 내에서도 왕따가 시작됐어요.



─관악부와 다르게, 반은 남자도 많이 있었을거라고 생각하는데, 남자들은 도와주지 않았었나요?


왕따의 중심에 있던게 어떤 여자 그룹이였는데요, 여자들의 기가 더 강했기 때문에, 남자들은 모두, 그 지배 하에 있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남녀 불문하고, 그 여자애들를 싫어하면 반으로 부터 따돌림 당하는 존재가 되어서.최종적으로는 다른 반의 아이들에게도 [ 사나는 따돌림 당한대 ] 라고 하는 이야기가 퍼져서, 어느 반의 아이들에게도 말을 듣지 않게 되거나 그래서, 그 시기는 정말 힘들었어요.



─장렬한 체험을 당했었네요. 반대로, 거기까지 내몰린 상태에서 등교거부를 안했다는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학교에 가는것 자체는 괴롭지 않았기 때문에, 출석일수를 채우기 위해서라도 회의실 등교는 힘내서 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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